본분을 지키는 일[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57〉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0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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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장훈 ‘택시운전사’


1980년 5월.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는 취재를 위해 광주로 들어가려 한다. 마침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는 거금 10만 원을 준다는 말에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피터를 태우고 광주로 들어간다.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랐던 만섭은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죽어 나가는 믿기지 않는 상황을 목도하고는, 그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피터를 돕는다.

‘택시운전사’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그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힌츠페터와 그를 광주까지 데려다준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제 일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엔딩에 실제 힌츠페터가 김사복을 찾는다는 영상이 들어 있어 영화만큼 그 실존 인물을 찾는 일에 대중적인 관심이 쏠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택시운전사’는 특히 평범한 소시민의 관점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홀로 집을 지키고 있을 어린 딸이 걱정돼 혼자 광주를 빠져나오지만 끝내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만섭의 변화에 관객들은 공감했다.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아빠 택시에 꼭 태워줘야 하는 손님인데 그 손님만 태워주고 아빠 금방 갈 테니까 그때까지 아줌마 말씀 잘 듣고….” 만섭은 그렇게 딸과 통화한 후 차를 돌려 광주로 되돌아간다.

만섭은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택시운전사로서 손님을 끝까지 태워줘야 한다는 본분을 지키는 것일 뿐. 하지만 본분을 지키는 일은 그 어떤 영웅적 행위보다 중요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는 손님을 태워주고, 기자는 끝까지 진실을 보도하며, 군인은 국민을 지키고,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 광주가 새삼스러워지는 5월, 각자 위치에서 본분을 지키는 자야말로 진정한 영웅일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택시운전사#5·18민주화운동#광주#피터#김사복#힌츠페터#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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