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김재영 군(가명)은 생후 100일 무렵부터 조부 김영광 씨(가명·79)와 함께 살아왔다. 홀로 손자를 돌보고 있는 할아버지는 척추 장애를 앓고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수록 건강이 더 악화됐고, 가정형편도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재영이는 어린 나이에 혼자 밥을 챙기고 집안일을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재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떡볶이이다. 친구들이 하굣길에 “같이 먹자”고 하지만, 재영이는 쉽게 따라가지 못한다. 호주머니를 뒤져봐도 나오는 건 동전 몇 개가 전부라 떡볶이를 사먹을 수가 없다. 예전엔 친구들에게 “돈도 안 내면서 왜 이렇게 많이 먹어?”라는 말도 들은 적이 있어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됐다. 그래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할아버지가 이 말을 듣고 속상하실까 봐서다.
친구들이 몇 번 간식을 사준 적도 있지만, 계속해서 신세지는 것도 미안해졌다. 그래서 친구들에겐 늘 “시간이 없다”고 하며 발길을 돌린다. 그렇게 재영이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할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냉장고에는 변변한 반찬 하나 없고, 손에 쥐는 것은 라면뿐이다. 재영이는 어린 손으로 조심스레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저녁을 준비한다. 물 조절이 어려워 냄비를 태우는 일도 잦다.
떡볶이, 마라탕 등 재영이는 먹고 싶은 음식이 많지만 할아버지께 괜한 부담이 될까봐 말하지 않는다. 그런 재영이를 보면 할아버지는 “내가 몸이 괜찮으면 뭐라도 좀 해주고 싶은데, 그것을 못해주니 가슴이 먹먹하고 답답할 뿐”이라며 속상한 마음을 드러낸다.
“할아버지 대신 내가 해낼게요”…조손 가정 재영이의 하루
재영 군(대역)이 병세가 악화된 조부를 부축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최근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척추장애를 앓는 할아버지는 당뇨합병증으로 신장 기능까지 크게 저하되면서 정기적인 투석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진료비와 약값만으로도 한 달에 40~50만 원이 들어가면서 이미 빠듯했던 생활은 더욱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아픈 할아버지를 대신해 재영이는 아침마다 약을 챙겨드리고, 하교 후에는 빨래며, 분리수거까지 스스로 해낸다. 아직 누군가의 돌봄이 절실한 나이지만, 재영이는 “내가 할아버지를 지키고 싶다”고 말한다.
곰팡이로 가득한 집, 주거 환경도 열악
곰팡이가 심하게 번진 재영 군의 방 내부 모습. 굿네이버스 제공. 두 사람이 머무는 집도 오래돼, 주거 환경 또한 열악하다. 벽과 천장에는 곰팡이가 넓게 퍼져 있다. 일부 공간에는 곰팡이 가루는 공기 중에 떠다녀, 결국 두 사람은 좁은 거실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가전제품은 대부분 고장 났지만 수리나 교체는 비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곰팡이 냄새가 가득한 집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며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재영이는 “할아버지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도 재영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생활비가 부족해 헌옷을 입고 작아진 신발을 억지로 착용하는 재영이의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현실에 늘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돌봄 공백 속 아이들…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절실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조손 가정’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조손 가정 아동 수는 약 5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 돌봄 공백, 건강 문제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끼니를 거르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학업 중단이나 사회적 고립 같은 2차적인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가능한 한 조기에 개입해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결식 위기에 놓인 아동들이 겪는 고통은 단순한 식사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와 발달 전반에 영향을 준다”며 “재영이처럼 보호자의 돌봄을 온전히 받기 어려운 아이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결식위기가정 재영이네 가정을 위해 생계비 및 생활용품, 치료비, 이사 비용 및 노후가전·가구 교체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기 후원(아래 링크) 모금액은 재영이네 가정을 위해 우선 사용되며, 이후 위기가정지원사업을 포함한 국내 사업 및 아동 지원에 소중하게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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