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피스홀딩스 신설
“복제약 개발 자회사 이해충돌 막고… 삼성바이오 위탁개발 경쟁력 제고”
홀딩스 산하에 새 자회사 만들어… 본격적인 신약 개발 도전 분석도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점찍었던 바이오 사업 강화에 나섰다. 삼성그룹 내에서 가장 매출 상승률이 높았던 바이오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에 나선다. 이를 통해 주력이었던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고난도 신약 개발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는 인적 분할을 통해 삼성에피스홀딩스(이하 홀딩스)를 새로 설립하고, 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사업을 각각 분리한다고 22일 공시했다. 이에 따라 현재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삼성에피스)는 홀딩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된다. 회사 측은 “중복 상장으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을 막기 위해 향후 5년간 삼성에피스 상장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홀딩스는 10월 1일 창립될 예정이며, 10월 29일 삼성바이오의 변경 상장과 홀딩스 재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번 분할로 기존 삼성바이오 주주는 삼성바이오 주식과 홀딩스 주식을 0.65 대 0.35 비율로 받게 된다.
삼성바이오가 이 같은 결단을 내린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꼽힌다.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삼성바이오와 자회사인 삼성에피스 간 이해 충돌 우려가 줄곧 제기됐는데 이를 막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다. 삼성바이오의 핵심 사업은 다른 제약사의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는 CDMO로, 글로벌 제약사 상위 20곳 중 17곳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반면 삼성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개발, 판매가 주요 사업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개발한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인 삼성에피스가 ‘경쟁자’가 될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를 함께 생산하는 글로벌 제약사까지 늘면서 이해 충돌에 대한 고객사들의 항의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가 인하 정책 및 의약품 관세도 인적 분할의 계기가 됐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관세 이슈로 CDMO 수주 경쟁이 심화됐다”며 “삼성에피스와의 이해 충돌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고 판단해 분할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 간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가령 최근 미국의 약가 인하 정책은 바이오시밀러를 판매하는 삼성에피스에는 기회지만, 삼성바이오 고객사에는 매출이 크게 떨어질 수 있는 위기다. 기회와 위기가 혼재된 상황에서 두 사업이 모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묶여 있다 보니 의사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그룹 내 주요 기업들의 주가 부진도 이번 분할의 배경이 됐다는 해석도 있다. 삼성물산과 삼성전자는 각각 삼성바이오의 지분을 43.06%, 31.2% 보유한 최대 주주다. 업계에서는 이번 분할을 통해 성장성이 큰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를 수평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된 삼성물산 및 삼성전자의 지분가치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분할을 통해 삼성이 본격적인 신약 개발에 시동을 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간 삼성바이오는 항제접합약물(ADC), 세포유전자치료제 등 유망한 바이오 기술을 보유한 기업에 투자해 왔지만 직접 신약 개발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삼성바이오는 이날 홀딩스 아래에 바이오 신기술 플랫폼을 개발하는 자회사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신설되는 자회사는 10월 21일 전까지 설립할 예정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설 자회사를 통해 삼성이 본격적인 신약 개발을 시작하려는 것 같다”며 “삼성바이오의 위탁개발(CDO) 노하우와 삼성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개발 역량이 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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