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있는 600채 규모의 한 아파트 단지. 이곳에서 영업하는 공인중개사 A 씨는 이날 오후 반차를 내고 갑자기 찾아온 직장인 아파트 매수 희망자와 함께 집주인이 살고 있는 경기 부천시까지 갔다. 전용 84㎡ 아파트가 시세 대비 5000만 원 낮은 23억5000만 원에 나와 계약을 서두르기 위해서다. A 씨는 “당초 매수자가 쉬는 날인 28일 토요일에 계약할 예정이었는데 대출을 제대로 다 받으려면 오늘까지 계약서를 써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진행됐다”며 “다른 고객들에게서도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최대 한도를 6억 원으로 제한하는 등 강력한 대출 규제를 발표한 27일, 시장은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고강도 규제가 전격적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혼란’보다도 ‘효과’에 더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대출이 많이 필요한 고가 주택으로 옮기려는 수요가 꺾이면서 시장 과열이 진정될 것”이라며 “불붙은 서울 집값에 단기 진정 효과는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더 늦으면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에 편승해 서울 아파트를 추격 매수하는 현상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 “당분간 거래 사라질 것”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이번 규제는 강남과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구)을 타깃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출을 많이 받아야 하는 주택일수록 영향이 클 것이고, ‘똘똘한 한 채’ 열풍이 주춤하며 ‘숨 고르기’ 장세로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수도권에서 6억 원 이상 대출을 못 받게 하는 건 전례 없는 내용”이라며 “서울 마포·성동 등 한강벨트 라인의 과열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번 규제 영향으로 당분간 아파트 거래는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제한되고 실거주 의무까지 부과되면서 이번 규제가 사실상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버금가는 규제라는 분석이 많기 때문이다.
함영진 랩장은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추가 지정하지 않고도 사실상 토지거래허가구역 효과를 냈다”며 “수도권에서 갭투자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면서 거래가 급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조치는 단순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조정이나 규제지역 지정 수준을 넘어서는 강력한 대출 억제책”이라며 “인위적으로 시장을 눌러 거래를 줄이려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결국 대출이 필요 없는 ‘현금 부자’만 주택을 매수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매매가 사라지면서 적어도 3개월 치 일감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 “공급 대책 빠진 건 아쉬워”
강력한 대출 규제가 시장을 진정시키는 단기 효과는 낼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적절한 주택 공급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김인만 소장은 “시장이 ‘진정’을 넘어 ‘안정’되려면 매물이 많아져야 한다”며 “이번 규제로 집주인이 매물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박원갑 위원은 “과거 15억 원 이상 주택에 대해 대출 자체를 전면 금지했을 때도 집값은 올랐다”며 “서울·수도권에서는 대출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급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30대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지나치게 대출을 묶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지영 신한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현금이 없는 2030 주택 구입률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며 “젊은 무주택자들의 ‘주거 사다리’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편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대출 규제에 대해 “대통령실 대책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 지금 대통령실은 아무런 입장이나 정책을 내놓은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이후 대변인실 명의로 공지를 내고 “대통령실은 부처 현안에 대해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변인의 설명이 대통령실이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지 않은 것처럼 전달되자 바로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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