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창작자가 졌다? AI기업 손 들어준 저작권 판결 의미[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2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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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허락 없이 소설·음악·영상을 통째로 인공지능(AI) 학습에 사용한다면? 저작권 침해일까요, 아닐까요. 이 치열한 논쟁과 관련한 역사적인 판결이 미국에서 나왔죠. 결론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 연이은 판결에서 미국 법원이 AI 기업 손을 들어줬는데요.

아, 이렇게 인간 창작자들은 무너지는 걸까요. AI 기업은 이제 아무 콘텐츠나 마음대로 가져다 써도 되는 걸까요? 글쎄요. 판결문을 좀 더 살펴보면 꼭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AI 기업 방어논리의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죠. ‘AI 대 인간’ 저작권 분쟁을 들여다봅니다.

내 책을, 노래를, 영화를 허락 없이 AI가 학습했다면? 게티이미지
내 책을, 노래를, 영화를 허락 없이 AI가 학습했다면?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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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 따윈 필요 없다
생성형 AI가 자기 작품을 무단으로 학습한 걸 알게 된 작가들이 미국에서 소송을 냈습니다. AI 챗봇은 그들의 책 내용을 요약할 수 있었고, 일부 구절은 그대로 복제해 내기도 했죠. ‘내 작품을 AI 학습에 이용해도 된다’고 허락한 적 없는데 말이죠.

소송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기술 기업 메타와 앤트로픽은 각각 수백만권의 책을 P2P 불법복제 사이트를 통해 입수해 AI 학습 데이터로 썼습니다. 그게 가장 빠르고 간편하다는 이유였죠. 출판사·저자와 일일이 라이선스 계약을 맺기란 꽤 번거로우니까요. 이는 회사의 최고위층(메타의 저커버그 CEO 포함)에게도 보고된 일이었습니다.

미국 AI 스타트업 앤트로픽은 AI 모델 클로드 학습을 위해 불법복제 사이트를 통해 700만권의 책을 확보했던 것이 드러났다. 다만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나중엔 종이책을 직접 사서 모든 페이지를 일일이 스캔한 뒤 이를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미국 1심 재판소는 앤트로픽이 저자 허락 없이 책을 AI 학습 데이터로 쓴 자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신 과거에 700만권을 불법복제 사이트에서 내려받은 것과 관련해선 별도 재판을 열기로 했다. AP 뉴시스
그래서 법원은 저자 허락 없이 책을 함부로 AI 학습에 사용하면 안 된다고 AI 기업에 철퇴를 내렸을까요? 아니, 그 반대였습니다. 책을 무단으로 AI 학습에 이용한 것 자체는 저작권 침해가 아니고 문제없다고 판결했죠. 다만 책을 정상적으로 사지 않고 어둠의 경로로 입수한 부분은 문제이니, 그건 별도 사건으로 다루겠다고 했습니다.

즉, 기업이 어떤 책을 서점에서 사서, 한 장씩 전부 스캔한 뒤 그 PDF 파일을 AI 훈련에 썼다면? (실제 앤트로픽은 이렇게도 했습니다.) 그건 저작권법에 어긋나지 않는 합법이라는 겁니다. 별도의 저자 허락이나 라이선스 계약이 없더라도 말이죠.

이게 바로 6월 23일 ‘앤트로픽 대 작가 3인’의 저작권 소송에 대한 판결, 6월 25일 ‘메타 대 13명 작가’의 비슷한 소송에 대한 판결의 공통된 결론입니다. 생성형 AI 모델의 저작권 침해 소송과 관련해 1심 판결이 미국에서 내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죠. 전 세계가 이에 주목했습니다.

‘공정이용’이란 방패
미국 법원은 왜 저자가 아닌 AI 기업 손을 들어줬을까요. LLM(대규모 언어모델) 훈련을 위해 책을 이용하는 건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는 기업 측 논리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딥다이브 기사를 쓸 때 저는 종종 책을 인용합니다. ‘기사에 책 내용을 인용해도 되나요?’라고 저자나 출판사에 일일이 허락을 구할 필요 없죠. ①그 책과 딥다이브 기사는 누가 봐도 목적과 성격이 다르고요(변형적), ②기사에 인용되는 부분은 극히 일부인 데다, ③무엇보다 기사로 인해 그 책이 덜 팔릴 가능성(시장 피해)이 없기 때문이죠.

바로 이런 게 ‘공정이용’에 해당합니다. 이번 소송에서 판사들이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며 AI 기업 손을 들어준 논리이죠.

2025년 4월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 ‘라마컨 2025’에서 사티아 나델라 MS CEO와 함께 무대에 오른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AP 뉴시스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나 메타 ‘라마’는 분명히 작가들의 책을 통째로 학습했습니다. 아마 100% 암기하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클로드나 라마는 그 책의 내용을 그대로 줄줄 읊기 위해 그걸 학습한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문맥에 맞는 새로운 텍스트를 생성해 내는 게 AI 학습의 목적이었죠.

간혹 책의 내용이 AI 답변에 등장하더라도 극히 일부일 겁니다. 예컨대 소송 과정에서 여러 시도를 했지만, 메타의 ‘라마’는 학습한 특정 책을 50단어 넘게 복제해 내진 못했다고 하죠(메타가 책을 그대로 출력하지 않도록 AI를 훈련시켰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LLM 훈련에 사용하는 목적과 성격은 놀랍도록 변형적이다.” (앤트로픽 사건을 담당한 윌리엄 알섭 판사)
“메타가 책을 사용한 건 책과는 ‘다른 목적’과 ‘다른 성격’을 가졌다는 점, 즉 매우 변형적이란 점엔 의문이 없다.” (메타 사건 담당한 빈스 차브리아 판사)
‘공정이용이니까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AI 기업의 논리가 통했습니다.

피해 보는 건 미래의 창작자
그런데 공정이용 조건 중 ③번, 시장 피해 부분은 어떨까요. 특정 작가 작품을 모조리 학습한 AI로 인해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 수천, 수만개씩 쏟아져 나온다면? 그땐 AI 출력물이 원본의 시장까지 잡아먹게 되지 않을까요.

이 부분에선 판사들 의견이 갈립니다. 앤트로픽 사건을 담당한 알섭 판사는 이 한마디로 일축했죠. “저자들의 주장은 어린이에게 글쓰기를 훈련시키는 게 경쟁작품의 폭발적 증가를 초래할 거라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혹시 AI 출력물이 내 작품을 대체할지 모르니까 내 작품을 AI 학습에 쓰지 마’라는 주장은 너무 나간 거라고 보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메타 사건을 판결한 차브리아 판사는 이런 시장 잠식의 위험성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그는 판결문에서 “알섭 판사의 비유(AI를 어린이에 비유한 것)가 부적절하다”고 대놓고 비판했는데요. 그는 이렇게 강조합니다. “이 사건은 과거 사례와 달리 원본 작품에 사용된 것보다 극히 적은 시간과 창의성만으로 수백 만개의 2차 작품을 생성할 수 있는 기술을 포함한다. 따라서 시장 희석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상대가 인간이 아닌 AI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봐야 한다는 거죠.

아울러 판결문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AI로 생성된 책은 아가사 크리스트 작품 시장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차세대 아가사 크리스티가 주목받거나 충분한 책을 팔아서 계속 글을 쓰는 걸 방해할 수 있다. 특정 논픽션 시장, 예를 들어 정원관리 방법에 관한 책은 LLM으로 인해 크게 위축될 수 있다.

AI가 쏟아낼 수많은 콘텐츠에도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슈퍼스타는 건재할 것이다. 대신 이제 막 피어나는 단계의 신진 창작가들은 AI 홍수에 휩쓸려 버릴지 모른다. AP 뉴시스
심리 과정에선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메타의 라마) 모델이 테일러 스위프트 노래 스타일로 100만 곡을 제작해도 테일러 스위프트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차세대 테일러 스위프트는 어떨까요? 알려지지 않은 신진 아티스트가 노래를 쓰고 있다면요?

이미 공고한 팬덤을 구축해 놓은 유명 작가라면, AI 시대에도 이름값이 유지될 겁니다. 하지만 이제 막 꽃피려는 신진 창작가들은 AI 발 콘텐츠 홍수 속에서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워지겠죠. 작가 이름 석 자보다는 그 내용과 주제로 독자 선택을 받는 논픽션 서적이나 뉴스, 잡지 시장은 타격이 훨씬 클 겁니다. 어쩌면 공짜로 풀릴 수많은 AI 제작 콘텐츠에 파묻혀 질식하게 될지 모르죠.

여기서 생각할 점. 저작권법은 왜 있는 걸까요. 인간이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창작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기 위한 법입니다. 만약 AI 학습이 그 인센티브를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건 공정이용이라 할 수 없죠.

그런데도 차브리아 판사는 마지못해 메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원고(작가) 측이 잠재적으로 승소할 가능성이 있는 주장-메타가 원고들과 비슷한 작품으로 시장을 침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죠. 만약 AI 때문에 작가들의 출판 시장이 직접적 또는 잠재적으로 피해를 보게 된다는 걸 입증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었다면 판결이 뒤바뀌었을 거란 뜻입니다.

소비자 가로채는 AI
겉으론 이번 두 저작권 소송에서 AI 기업이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절반의 승리일 뿐입니다. ①불법적 경로로 수집한 데이터로 AI를 학습시키는 건 불법이라는 게 확실해졌고요. (불법 복제로 얻은 책을 나중에 직접 구입하더라도, 이전 불법행위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판결) ②AI 출력물이 기존 창작자 시장을 잠식하느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란은 더 커질 테니까요.

결국 AI와 인간 창작자 간 법정 싸움에서 중요한 건 ‘입력’이 아닌 ‘출력’입니다. ‘내 허락 없이 AI 학습(입력)에 쓰지 마!’라는 주장만으론 AI 기업의 ‘공정 이용’ 논리를 깨는 데 한계가 있고요. ‘내 작품으로 학습한 AI 출력물이 내 시장을 망가뜨리고 있다’면서 증거를 들이밀어야 하는 거죠.

사실 AI 출력물이 인간 창작물과 얼마나 비슷한지는 쉽게 드러납니다. 예컨대 최근 디즈니와 NBC유니버설이 생성형 AI 플랫폼 미드저니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그 소장에서 제시한 미드저니의 저작권 침해 사례들을 한번 보시죠.

미드저니가 AI로 만들어낸 이미지들. 디즈니와 NBC유니버설이 미드저니의 저작권 침해를 입증하는 사례로 소장에 제시했다.
미드저니가 AI로 만들어낸 이미지들. 디즈니와 NBC유니버설이 미드저니의 저작권 침해를 입증하는 사례로 소장에 제시했다.
물론 이런 AI 생성 이미지가 실제로 기업에 어떤 피해를 얼마나 끼쳤느냐에 대해선 다툴 여지가 크지만요. 작품을 베껴도 너무 베꼈다는 것만은 한눈에 바로 알 수 있죠. 두 제작사는 소장에서 “미드저니는 전형적인 저작권 무임승차자이자 끝없는 표절의 온상”이라고 비판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AI 출력물과 관련한 비슷한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뉴욕타임스가 2023년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요. 뉴욕타임스 변호인은 지난 1월 심리에서 챗GPT가 뉴욕타임스에서 다룬 주제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기사 내용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점을 강조했죠. 그 결과 챗봇이 뉴스 사이트로 와야 할 소비자를 가로채는 ‘시장 대체(market substitution)’가 나타난다는 주장입니다.

AI 챗봇은 이미 뉴스 사이트 트래픽을 붕괴시켰습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포스트, 허프포스트, 비즈니스인사이더 같은 미국 언론사는 검색을 통한 사이트 유입량이 3년 전보다 50% 이상 줄었다죠. AI 챗봇이 구글 검색을 대체하면서 더 이상 링크를 클릭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장 침해를 입증한다고 해서 ‘AI 훈련 일시 중단’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것 같진 않고요. 현실적인 해결책은 창작자와 AI 기업, 양측이 합의하는 거겠죠. 기업이 적정한 수준의 사용료를 내며 저작물을 이용하는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식이 될 겁니다.

AI 음악 생성 스타트업 유디오는 ‘당신의 음악을 만들라’는 컨셉이다. 간단한 프롬프트만 입력하면 AI가 음악을 만들어준다. 물론 이를 위해 수많은 음악을 이용해 AI를 학습시켰다. 유디오 측은 이것이 ‘공정 이용’이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디오 공식 SNS
바로 이런 일이 음반 업계에서 진행 중입니다. AI 스타트업 수노(Suno)와 유디오(Udio)는 간단한 입력어(예- 팝 느낌의 생일 축하 노래)만으로 노래를 뚝딱 만들어주는데요. 당연히 방대한 음악을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했죠. 결국 지난해 주요 음반사가 속한 미국음반산업협회가 두 기업에 수십억 달러짜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한판 제대로 붙는 듯했는데요.

최근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주요 음반사들(유니버설뮤직·워너뮤직·소니뮤직)이 두 AI 기업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으면서 일부 지분을 인수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하죠. 싸움을 멈추고 손을 잡으려는 겁니다. 어차피 AI라는 기술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는 걸 인정한 거죠. 놀라운 협상력으로 스트리밍이란 디지털 신기술에 올라탔던 음반 업계는 AI 시대에도 주도권을 지킬 수 있을까요. 결말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왠지 인간 창작자 집단을 응원하게 됩니다. By.딥다이브

AI로 인해 인간 창작자가 더 이상 창작활동으로 먹고 살 수 없게 된다면, 그래서 인간의 창작물이 자취를 감춘다면, 그때 AI는 무엇을 가지고 학습하게 될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창작자의 허락 없이 작품을 AI 학습에 이용하는 건 저작권 침해일까요. 최근 미국에서 나온 두 판결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는 결론입니다. 기존 작품과 전혀 다른 목적과 성격을 가지는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봤기 때문이죠.

-하지만 AI가 쏟아낼 수많은 출력물이 원본 작품의 시장을 잡아먹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미래 창작자들이 활동할 잠재적 시장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요. 앞으로 이어질 AI 저작권 소송에선 바로 이 부분이 쟁점이 될 겁니다.

-영화 제작사, 언론사들이 줄줄이 AI 기업을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인간 대 AI의 치열한 분쟁은 당분간 이어질 텐데요. 이 가운데 음악 생성 AI 스타트업과 싸움을 멈추고 손잡으려 하는 주요 음반 제작사의 행보가 눈에 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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