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도 전자투표 시대[박일규의 정비 이슈 분석]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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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총회 참석도 출석 인정
‘코로나 시국’에 전자투표 싹터
거부감-불안감 해소 뒷받침돼야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
정비업계에 본격적인 전자투표 시대가 열린다. 12월부터 정비사업 과정에서 필요한 동의서 제출과 총회의 의결권 행사 시 전자적 방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총회 온라인 참석도 직접 출석으로 인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정보기술(IT) 강국’이지만 전자투표가 정비사업에 도입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있었다. 정비사업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은 조합원 총회를 거쳐야 한다. 조합원 과반수 참석과 참석 조합원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총회 결의가 적법해진다. 총회가 통상 주말에 개최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절반 넘는 조합원을 총회 장소로 이끄는 일은 특별한 이슈가 있지 않고서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실적으로 정족수 충족이 힘들다 보니 대안으로 주목받은 제도가 ‘서면결의’였다. 총회 장소에 직접 가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간단히 서면을 제출해 참석과 의결권 행사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의결의 확실성과 편리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제도였다. 이 때문에 서면결의는 순식간에 직접 참석을 밀어내고 의사결정 방법의 대세가 되었다. 뒤늦게나마 직접 참석 비율을 강제하는 규정이 추가됐지만 서면결의의 위상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코로나 시국’은 정비업계에 전자투표의 싹을 틔웠다. 밀폐된 장소에 다수가 모이는 것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총회 직접 참석을 일시적으로 대신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시국의 전자투표는 견고하던 서면결의 제도에 균열을 가져왔다. 부산의 모 구역에서 서면결의를 대신해 전자투표를 실시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해당 총회의 적법성이 다투어졌고 이를 심리한 부산고등법원은 서면결의를 대신하는 전자투표를 위법·무효로 선언했다. 도시정비법이 인정하는 전자투표는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에서 직접 참석을 대체하기 위해서만 인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얼마 후 서울고등법원은 부산고등법원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표했다. 서면결의를 대신하는 전자투표도 도시정비법의 해석상 허용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서면결의를 대신하는 전자투표의 유효성을 둘러싼 두 고등법원 간 상반된 입장은 곧 업계의 극심한 혼란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는 ‘전자투표 전면 허용’과 ‘온라인 총회’라는 지금의 법 개정을 촉발했다.

압도적 경제성과 편의를 내세운 전자투표지만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 지적되는 것이 전자적 방식에 관한 일반인들의 이해 부족이다. 서면결의는 익숙하고 쉽다고 느끼면서도 전자적 방식에는 심리적 장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연령대가 높은 정비사업 조합원들의 특성을 고려하면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전자투표 안내를 위해 서면결의서를 걷는 데 투입하던 ‘홍보 요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자적 방식에 대한 거부감은 해킹이나 조작이 있더라도 일반인이 밝혀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유발한다. 나이 든 세대가 전자적 방식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심리적 장벽은 엄연히 실존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앞으로는 이런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한 업계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하기 쉽고 기술적으로도 안전한 전자투표 시스템의 구축이 입증된다면 말 많고 탈 많았던 서면결의가 사라질 날이 예상보다 이른 시기에 올지도 모르겠다.

#정비사업#전자투표#조합원#서면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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