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국무회의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파초선’ 얘기는 구구절절 옳다. 이 대통령은 권력을 손오공의 파초선에 비유했다. 파초선을 한 번 부치면 천둥 번개가 치고, 두 번 부치면 태풍이 부는 것처럼 권력도 작은 움직임만으로 세상에 격변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이 권력을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경고를 옛이야기에 담아 내놓은 것이다.
이 대통령의 말에서 ‘권력’을 ‘규제’로 바꾸면 의미가 좀 더 뚜렷해진다. 통상적으로 공직자들의 권력 사용은 규제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규제 연구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고든 털럭 교수는 “공직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고 재량권을 늘리며 자신들이 통제하는 영역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관료적 본능의 결과물이 규제”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규제는 권력의 본능인 셈이다.
규제는 권한 확대 원하는 권력의 본능
입법·사법 권력이 행정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삼권분립 측면에서 공직자의 규제 본능을 제어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어야 할 것 같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선의의 목표를 가진 정치인들이 앞장서 합의와 타협을 이뤄내면 규제가 강화될 여지가 줄어들게 된다. 심지어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암반 규제’도 깰 수 있다.
하지만 극단적 진영논리에 빠진 한국 정치인들은 오히려 공직자들의 규제 본능을 부추기는 듯한 모습이다. 지지층의 표를 얻기 위해 공공의 이익을 버리고 반대 집단을 규제로 옭아매는 형국이다. 특정 지지층은 표를 앞세워 정치인을 장악하고, 이런 정치인들이 공직자의 규제 본능을 자극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카고대의 조지 스티글러 교수는 이런 상황을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이라고 설명했다.
월 2회 휴업을 강제하고 있는 대형마트 규제는 논란이 많다. 일부에서는 대표적인 규제 포획 사례로 꼽기도 한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도입됐지만 시행 13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4월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2022년 주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 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한 일요일(630만 원)보다 오히려 낮게 나타났다. 게다가 최근 유통 시장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경쟁이 아니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쟁으로 이미 변모했다.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이 살아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지층의 표를 노린 정치인과 권한 확대를 원하는 공직자들의 본능이 맞아떨어지면서 규제는 요지부동이다.
K뷰티는 규제 개혁의 산물
나쁜 규제가 사라지면 산업이 살아난다. 2012년까지 한국에서는 화장품 제조와 판매를 동일 기업이 해야 했다. 또 정해진 원료만 사용하도록 하는 ‘포지티브 리스트’ 규제도 있었다. 하지만 법 개정을 통해 제조와 판매를 분리했고, 금지 원료만 명시하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으로 개선도 이뤄졌다. 이후 한국콜마, 코스맥스 같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이 성장했다. 이들과 함께 에이피알, 아누아, 조선미녀, 티르티르, 브이티 등 중소 브랜드들이 세계에서 주목받게 됐다. 규제 개혁의 순간이 K뷰티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심각한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라고 한다. 정부의 현금 지원만으로는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 기업들이 자신의 능력을 펼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직자들이 손에 쥔 파초선을 휘두르려는 본능을 억제할 수 있을 때 경제가 살아나고 산업이 커진다. 스스로 그 본능을 제어하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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