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정년퇴직한 A 씨는 올 초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개인택시를 하기로 마음먹고 운전대를 잡기까지 1년 반이 걸렸다. 다른 개인택시 기사의 영업 면허를 양수(讓受)하려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교육이 있는데, ‘로또만큼 되기 어렵다’는 말대로 신청자가 몰려 교육 신청부터 번번이 물을 먹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 그간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씩 하며 기다렸다. 그는 “일 안 하는 게 일상이 되면 하루가 너무 길다”며 “하고 싶을 때 나와 일하는데 벌이도 나쁘지 않아 이 일이 좋다”고 했다.
A 씨처럼 법정 정년인 60세를 지나서도 일하는 이들이 처음으로 7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60세 이상 취업자는 역대 최대인 704만9000명이었다. 4년 전보다 150만 명 가까이 불어나며 20대 취업자 수의 2배에 달했다. 60세 이상 인구에서 취업자 비율을 뜻하는 고용률도 48.3%였다. 60세가 넘는 이들의 절반 가까이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일터에 나서는 이유는 그 수만큼 제각각일 것이다. 다만 통계로 들여다본 일하는 이유에선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통계청은 1년에 한 번씩 55∼79세를 대상으로 앞으로 일을 하고 싶은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이 조사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로 ‘생활비에 보탬’을 꼽은 이들의 비중은 2021년부터 매년 줄고 있다. 반면 ‘일하는 즐거움’이라는 답변의 비중은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건강 유지’와 ‘무료해서’를 고른 사람들도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즐거움을 위해 일을 하겠다는 노인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1000만 명에 육박하는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가 본격적으로 6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또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서 “최근의 고령 인력은 이전 세대와 달리 고숙련 고학력자 비중이 높다”며 “고령 인력 중 대졸 이상 비중이 지난 10년간 약 10%포인트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현장에선 노인 대열에 합류한 고학력 인력들에 대한 맞춤형 취업 지원에 나서겠다는 목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재미있게 일할 때’라며 일자리지원센터에 올라온 프로그램들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학 졸업장과 여러 경력을 갖춘 이들이 대형마트에서 와인이나 건강기능식품을 추천, 판매하고 도보로 배달을 하는 데 필요한 교육을 받으며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노인 일자리 사업은 그간 생계 보조나 사회적 배려라는 인식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앞으로도 사업의 핵심은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열악한 근로 환경에 내몰리는 노인들에 대한 지원이 돼야 한다. 다만 생계가 아닌 다른 이유로 고용시장에 발을 내딛는 노인에 대한 지원도 짚어 봐야 할 때가 됐다. 3년 전에도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 노인들이 생각보다 가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깔고 앉아 있는 집 등을 고려하면 다를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더 늦게 태어난 노인일수록 빈곤 문제도 덜하다. 이젠 노인이라는 한 단어로 묶기에는 노인의 모습이 다양해졌다. 각각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다시 일터에 나와 진짜 재미있게 일하게 만드는 것도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다시 높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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