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주 의회에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과 벌인 한판 공방은 격렬했다. 15년 지기 의회 동료라는 크리스 밴홀런 상원의원은 목까지 시뻘게질 정도로 고성을 질러가며 루비오 장관을 맹공했는데, 속사포로 받아치는 루비오 장관도 날이 잔뜩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대응, 국제개발처(USAID) 예산 삭감 등 현안을 놓고 양측은 3시간 동안 건건이 충돌했다.
6·3 대선 후 몰려올 외교안보 현안들
국내 이슈는 몰라도 외교안보 정책만큼은 초당적으로 협력해온 게 미국 의회였다. 그러나 전례 없이 벌어진 정치 양극화의 간극 속에 미국마저 ‘초당적’이라는 단어는 신화 속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 “(당파적) 정치는 국경선에서 멈춰야 한다(politics stops at the water’s edge)”고 외치며 외교안보 분야의 초당적 협력을 끌어냈던 ‘반덴버그 결의안’이 무색하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한국이야말로 초당적 외교가 절실한 나라다. 그러나 전문가와 정치인, 언론이 모두 한목소리로 그 필요성을 외쳐 왔음에도 지금까지의 시도들은 낙제점에 가깝다. 4강에 둘러싸인 것도 모자라 핵 개발에 골몰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차이부터 현격해 중간 지점을 찾기 어려운 탓이다. 국익을 앞세운다지만 각자가 보는 국익의 성격과 확보 방안, 달성 시점 또한 일치하지 않는다.
대선을 앞두고 각 당 후보들이 내놓은 외교안보 분야 공약은 사안마다 차이가 상당하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주한미군 역할 재조정,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 동참 여부를 놓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다른 대응안을 제시하고 있다. 민감도가 높은 대(對)중국, 일본 정책에 있어서도 양당의 접근법 차이는 적잖다. 이 후보가 ‘실용외교’를 앞세우며 일부 우클릭을 시도하고 있지만, 캠프에 포진한 인사들의 면면으로 볼 때 실제 이행에 들어가면 다시 강경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미국은 관세 협상 강도를 높이고 주한미군 감축 혹은 재배치, 최대 10배까지 거론됐던 방위비 증액 요구, 대만해협을 아우르는 전쟁구역(전구·戰區) 통합 논의 등을 줄줄이 본격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틈을 타고 한미 관계를 이격시키려는 중국의 시도 또한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여론은 민감해지고, 양당의 갈등은 그만큼 더 첨예해질 것이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분열의 과정은 애써 끌어모아도 부족할 대외적 협상력을 갉아먹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점에 국회 미래연구원이 초당적 외교안보 분야 합의점을 찾아보겠다며 최근 보수, 진보 양쪽의 전문가와 국회의원 등을 모아 ‘코리아 컨센서스’ 포럼을 발족시킨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축사에 나선 우원식 국회의장이 “전환기 복합적 위협 속에서 어느 때보다 초당적 외교가 중요해졌다”고 역설하는 그 시간에 민주당에서는 김문수 후보를 향해 ‘국익을 위협하는 외교 리스크’, ‘위험하고 해로운 졸속 후보’라고 비난하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방위비 분담금을 올릴 수 있다는 김 후보의 한마디를 이렇게 문제 삼았다.
이념 절제 속 보수-진보 접점 찾아야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초당적 협력은 아직까지는 달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허상이다. 다만 그 허상이라도 좇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대외적 환경이 엄중하다. 결국 의견 차이를 좁혀가며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접점을 조금씩이나마 찾아 나가는 수밖에 없다. 현안을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강경파에 휘둘리지 않고 이념을 앞세운 과격한 주장을 자제하는 절제력부터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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