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모교 도서관에서 이른 20대를 환기하며[2030세상/김지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5월 25일 23시 09분


코멘트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스스로에게 자유를 부여한 날이었다. 카페에 갈까 하다가 문득 대학 도서관이 떠올라 집에서 40분 거리의 모교로 향했다. 평일 낮 지하철은 한산했고, 쏟아지는 봄볕 아래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가슴은 혼자 비밀을 간직한 듯 뛰었다.

오랜 기간 생각만 해온 작은 사치가 있었다. 졸업생 출입증. 보통 도서관보다는 카페를 찾기도 하거니와 별다른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들이 집 근처에도 많았다. 거리가 가까운 편도 아니고, 가면 몇 번이나 가고 책을 빌리면 몇 권이나 빌릴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연간 7만 원이라는 비용을 내면서까지 모교 도서관의 출입증을 신청할 이유는 하등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늘 향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도서관에 도착해 신청서를 작성했다. 학번을 쓰는 난에서 잠시 당황했지만 ‘2008’을 쓰자 자석처럼 따라붙는 뒤 번호에 스스로도 감탄했다. 따끈따끈한 출입증을 손에 쥐고 도서관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왠지 모를 긴장감에 지하철을 처음 타는 사람처럼 버벅거렸다. 졸업 후 십여 년간 굳게 닫혀 있던 추억에 마침내 발을 들이는 순간이었다.

촌스러움과 고풍스러움 그 사이 어디쯤에 있던 목조 일색의 인테리어 대신 고급 카페를 방불케 하는 세련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외관은 낯설었지만 특유의 냄새만큼은 여전해 반가웠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늘 앉던 자리, 1관 2층. 정확하게는 1층이 내려다보이는 메자닌 구조의 중층이라 탁 트인 개방감이 일색인 곳이었다.

바로 앞에 카페가 있었지만 부러 먼 편의점까지 가 그 당시 즐겨 마시던 캔커피를 사 왔다.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달달함을 찾으니 시절이 밀려들어왔다. 이 책상에 앉아 시험공부를 하고 지원서를 썼다. 그때의 도서관은 조용한 전장(戰場)이었고, 모두가 저마다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이제 나의 책상에는 두꺼운 전공서적 대신 육아서적이 올라와 있다.

그러니까 내가 비용을 지불한 것은 그때의 나였다. 무엇이 될지 몰랐던, 사실은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불안하고 반짝이던 이른 20대의 환기. 그 시절 나는 아침마다 뜨거운 캔커피를 들고 이곳을 찾았다. 기대했던 토플 점수가 형편없었을 때도, 공들여 쓴 이력서가 줄줄이 떨어졌을 때도, 규칙적으로 애쓰는 시간으로 불안을 잠재웠다.

한없이 아득했던 시간도 돌아보면 애틋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집에는 50일 된 아기가 있고 복직은 5주 앞으로 다가왔다. 생의 새로운 관문 앞에 선 지금, 불현듯 이 공간을 떠올린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매주 한 번은 등교하듯 이 자리를 찾기로 다짐했다. 다시 한 번, 규칙적으로 애쓰는 시간으로 불안을 잠재워 보기로 했다. 그때도 지금도, 이 조용한 전쟁의 결말은 승패가 아닌 성장이다. 잘 어루만져진 아득함의 다른 이름은 ‘설렘’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귀갓길, 카페 대신 모교 도서관에 열네 번은 와야 본전임을 헤아리며 잠시, 아주 잠시 또 아득해졌다.

#도서관#졸업생 출입증#향수#추억#성장#설렘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OSZ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