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NOW]
소비 구조조정에 나선 사람들… 명품 대신 품질 좋은 듀프 찾아
다이소 화장품-유니클로 가방
자신만의 우선순위 찾아 지출
불황기 소비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불필요한 소비 지출은 줄이고 저렴한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품을 줄인 ‘합리적 소비’가 일상화된다.
고가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고 품질 좋은 ‘듀프(복제)’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유니클로의 ‘2WAY유틸리티숄더백’ 같은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유니클로 홈페이지 캡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이러한 경향은 뚜렷했다. 기존 노트북의 4분의 1 가격에 휴대성을 높인 ‘넷북’이 열풍을 일으켰고, 합리적 가격에 패션 감각을 드높인 스페인 SPA 브랜드 자라(ZARA)가 같은 해 한국 시장에 진입했다. 이미 한국에 진출해 있던 유니클로도 이 시기를 기점으로 국내 매출이 급증했다. 도시락 소비 확대, 무지출 챌린지, 반값 상품 시리즈, 가정식 선호 등 가성비와 실용을 중심으로 한 소비 흐름이 본격화됐다.
2025년 현재, 소비자들은 또 한번 불황의 파고를 마주하고 있다. 지금의 불황은 2008년과 무엇이 같고 다를까? 소비자는 어떤 태도로 이 어려움을 타개하려 할까? 이번 불황에서 주목할 키워드는 ‘소비 구조조정’이다. “그동안 누려온 삶의 수준을 불황기에도 동일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소비자들이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소비 구조조정이다.
소비 구조조정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소비를 줄일 영역과 유지할 영역을 전략적으로 선택한다. 이는 경제학의 ‘톱니바퀴 효과(ratchet effect)’와 관련이 깊다. 사람들은 소득이 줄어도 이전의 소비 수준을 유지하려 노력하다가, 도저히 불가능한 시점이 되면 그제야 소비를 급격히 줄인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계단식으로 감소하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6월 1일 발간한 ‘세대별 소비 성향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보건(2.6%포인트), 오락·문화(2.4%포인트), 음식·숙박(0.7%포인트) 분야 소비는 늘었다. 반면 식료품·음료(―2.3%포인트), 의류·신발(―1.6%포인트), 교육(―0.9%포인트) 등 전통적인 생필품 소비는 줄어들었다. 경제가 어려워도 건강과 여가만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둘째, 한 카테고리 안에서도 고가와 저가를 적절히 섞는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사한다. 모든 화장품을 백화점 브랜드로 사용하던 소비자가 스킨케어는 합리적 가격 제품으로 바꾸더라도, 에센스만큼은 백화점 브랜드를 고수하는 식이다. 생수는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구입하되, 좋아하는 간식은 비싼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부상하는 현상이 바로 ‘듀프 소비’다. 듀프(Dupe)란 ‘Duplicate(복제하다)’에서 유래한 용어로,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디자인이나 기능이 비슷한 합법적 제품을 의미한다. ‘포터맛 유니클로’, ‘르메르맛 자라’처럼 고가 브랜드를 꼭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상품에서는 품질 좋은 듀프를 찾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가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고 품질 좋은 ‘듀프(복제)’ 상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다이소에서 파는 ‘손앤박 아티 스프레드 컬러 밤’3 같은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다이소 홈페이지 캡처셋째, 가격에 유연하게 대응한다. 최근 뷰티 부문을 강화하고 있는 다이소를 가보면 흥미로운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3mL 클렌징폼 5개 세트, 2mL 에센스 6개 세트 등 용량을 줄이고 패키징을 최소화해 판매 가격을 낮춘 화장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편의점 CU가 편의점 업계 최초로 출시한 1000원대 중반의 150g 소포장 1인분 쌀도 같은 맥락이다.
경기 불황·고물가 속에 시몬스 침대는 최대 24개월 장기 카드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인 ‘시몬스 페이’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몬스 침대 제공지불하는 가격의 단위를 조정해 구매 부담을 줄이기도 한다. 시몬스가 운영하는 ‘시몬스페이’는 침대를 최대 24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매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루 커피 한 잔 값에 프리미엄 침대를 소유할 수 있다”는 마케팅으로 고가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심리적 부담을 낮춘 전략이다. 구독 서비스의 확산도 같은 맥락이다. 한 번에 수십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월 단위로 나눠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넷플릭스 같은 콘텐츠 산업은 물론이고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가전제품 판매도 최근 구독 모델로 전환했다.
불황기 소비자들은 과거처럼 무작정 모든 것을 줄이는 대신 자신만의 우선순위를 정해 똑똑하게 소비하고 있다. 이제 기업들도 “소비자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불황 속에서도 새로운 기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