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매장에서 20만 종 이상의 물품을 판매하는 한즈만 매장 내부 모습. 한즈만 홈페이지 캡처
‘나사만 1만 종류 진열, 오이값 오르면 그 이유와 전망 일일이 설명….’
불황 속에서도 고성장을 이어가는 일본의 혁신 유통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소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참조할 만한 성공 사례들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5일 ‘불황을 이겨낸 일본 혁신 유통기업의 대응 사례와 시사점’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일본 유통기업들의 혁신 사례를 소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많이 파는 것보다 필요한 것을 찾는 경험’, ‘낮은 가격보다 납득할 수 있는 가격’, ‘외주 생산보다 스스로 만들고 공급하는 구조’ 등 기존 유통업의 상식을 깨면서 위기 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일본 규슈를 중심으로 성장한 DIY(Do It Yourself·손수 제작) 용품 전문점 한즈만은 ‘고객이 원하면 다 해준다’는 판매 정책을 내세운다. 한 매장에 20만 개가 넘는 다양한 상품을 확보하고 목공, 전기, 정원, 배관 등 각 카테고리마다 극단적인 세분화에 나섰다. 판매하는 나사 종류만 1만 가지에 달하는 식이다.
일본 프리미엄 식료품 유통업체 기타노에이스도 단일 점포에 500종 이상의 카레 상품, 100종 이상의 샐러드 드레싱이 진열돼 있다. 상품 회전율보다는 ‘발견의 즐거움’을 핵심 가치로 삼고, ‘식문화를 탐험하는 실렉트 숍’으로 변신해 특정 소비층의 충성도가 높다.
할인슈퍼마켓 오케이는 ‘정직카드’라 불리는 종이 한 장을 매장 내 모든 주요 상품 옆에 게시해 둔다. 오케이 홈페이지에 올라온 오이 관련 정직카드에는 “집중호우로 오이 가격이 전년 대비 50% 올랐다”고 안내하고 있다. 또 대체 상품으로 샐러드를 추천하면서 “가격이 조정되면 바로 안내할 것”이라는 메시지도 덧붙였다.
오케이는 이 정직카드 시스템을 통해 소비자와 신뢰를 구축하며 고객만족도 13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오케이 영업이익률은 5.9%로 일본 슈퍼마켓 평균 영업이익률인 2∼4%를 크게 웃돈다.
판매와 공급망을 통합하는 ‘제조 내재화’ 정책도 눈에 띈다. 유니클로는 “우리는 정보로 옷을 짓는 회사다”라는 모토 아래 전 부서를 통합하고 부서 간 실시간 데이터 공유를 통해 ‘팔리는 순간 생산이 시작되는 시스템(정보제조 소매업)’을 만들어 냈다. 기획부터 판매량 등 데이터에 따라 직접 생산과 물류를 조정하는 수직통합형 모델이다. 유니클로 모회사의 지난해 기준 연간(2023년 9월∼2024년 8월) 매출은 2020년 동기 대비 54.5%, 영업이익은 23.5% 증가했다.
일본 유통업체들은 낡은 사업모델에서 벗어나 업무 형태 혁신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본 최대 유통기업 이온리테일은 어린이 전문 매장과 체험형 마켓 운영, 푸드코트 및 즉석조리식품 강화 등을 통해 방문객 체류 시간을 늘리고 대형마트를 가족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슈퍼마켓 체인 라이프도 카트에 제품을 담으면 이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셀프 스캐닝 카트’, 전자 가격 표시기 등 첨단 기술을 매장에 적용한 ‘차세대 슈퍼마켓 4.0 모델’을 도입했다.
장근무 대한상의 유통물류진흥원장은 “일본 유통업계는 기존과 정반대의 전략으로 불황을 기회로 바꿨다”며 “한국 역시 고령화와 소비 침체라는 유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단기적인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강점을 구축하고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는 방향으로의 근본적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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