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를 품은 석사자처럼… 유물-관람객 ‘소리없이’ 30년 지켰죠”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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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지킴이들] 〈1〉 권영일 국립대구박물관 방호관
질문 답하려 문화유산 공부 또 공부… 빌런 나타나면 토기이야기로 다독여
“힘든 날 많았지만 천운이자 천직
박물관 놀이터 삼아 놀던 아이들, 번듯한 어른 돼 인사하러 오면 뭉클”

국립대구박물관의 권영일 방호주사보는 30년 베테랑답게, 관람객을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방문 목적이나 관심 정도 등을 단숨에 알아챈다고 한다. 그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어디서건 사건이 있으면 자꾸 앞서는 직업병이 생겼다”며 “밀집 공간에선 언제나 화재경보기와 탈출구부터 강박적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대구=이지윤 기자 [email protected]
《깊은 흙과 바다에서 찾아낸, 혹은 이역만리에서 되찾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들. 이 보물들이 박물관 등에서 우리와 만나기까진 여러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을 돌보고 가꾸는 ‘지킴이’들을 격주마다 소개한다.》


“다 괜찮다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보살님이 다독이는 것 같았어요.”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 꽃장식 관을 쓴 보살. 그 오묘한 미소가 잔향을 남기는 국보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은은한 미소가 특징인 국립대구박물관 소장 국보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 대구=이지윤 기자 [email protected]
1990년대 어느 날. 대구 수성구 국립대구박물관이 직장이던 한 30대 가장은 통로를 걷다 자주 넋을 잃곤 했다. 박물관이 소장한 이 신라시대 불상이 자꾸 말을 거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삶이 곤궁하던 시절, 오른쪽 무릎을 살짝 구부린 보살의 눈빛을 그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강산이 3번 변하는 동안, 둘은 소중한 친구가 됐다.

2023년 국내에도 소개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웅진지식하우스)는 최근까지 20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 당연히 한국에도 전시관엔 경비원이 있다. 박물관의 안전과 질서를 관리하는 이들의 정식 명칭은 ‘방호관(防護官)’. 대구박물관의 권영일 방호주사보(59)는 올해 30년 근속을 맞는 최고참 방호관이다.

1994년 박물관 개관 뒤 이듬해 입사한 권 주사보는 신출내기 때만 해도 고민이 많았다. “혼자 벌어 본가와 처가까지 먹여 살려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퇴근 뒤 밤마다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며 “하소연할 데가 없어 끙끙 앓을 때 금동보살이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방호관 하면 침묵 속에서 일하는 이들을 떠올리기 쉽다. 실제로 권 주사보도 초창기엔 “종일 그림자 생활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낮이고 밤이고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문화유산과 관람객의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다.

하지만 의외로 관람객과의 ‘접촉’도 적지 않다. “이 불상 어디 있어요?” “이거 진품 맞아요?” 등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그러다 보니 권 주사보도 자연스레 문화유산 공부를 이어갔다. 행여나 위압적으로 보일까봐 사람들의 기분도 꼼꼼히 살폈다.

심심찮게 출몰하는 ‘빌런(악당)’을 응대하는 실력 역시 늘었다. 권 주사보는 “이유 없이 악을 쓰거나 주위에 시비를 거는 이들을 순식간에 잠재우는 비법은 바로 ‘토기’ 이야기”라고 했다.

“후기 신라 토기는 가야 토기에 비해 굽는 온도가 100도 이상 높아요. 이는 훗날 신라가 가야를 정복하는 기술적 바탕이 됐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흥미롭고 숙연해서인지, 신기하게 행패를 부리다가도 조용히 경청해요.”

돌아보면 힘든 나날이 많았지만, 권 주사보에게 방호관은 “천운이자 천직”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 갈 형편이 못 됐던 젊은 시절. 대신 방방곡곡 ‘탑 구경’을 다니며 시름을 잊었다. 그 계기도, 대구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보물 ‘의성 관덕동 석사자’였다.

“삼층석탑 기단(基壇)의 일부인데, 통상 석물은 대리석을 쓰는데 이 석사자는 사암으로 만들어졌어요. 어찌 보면 특별할 게 없지만, 새끼를 품은 채 살아남은 모습이 저 같았어요. 원래 석사자가 있던 탑 터를 물어물어 찾아갖죠. 그때부터 가족이랑 탑만 150개 넘게 보러 다녔습니다.”

그런 열정이 일터에서도 통한 걸까. 권 주사보는 대구박물관에서 꽤나 유명인사다. 많은 아이들이 ‘박물관 아저씨’라 부르며 친근함을 표한다. 20여 년 전엔, 놀 곳이 마땅찮은 동네 아이들이 자주 박물관에 몰려와 우당탕탕 칼싸움을 했다고 한다. ‘박물관 아저씨’는 그때마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에게 책을 읽거나 문화유산을 공부하는 ‘벌’을 내렸다. 이제 그 아이들이 번듯한 어른이 돼 인사하러 온다.

“100원짜리 자판기 코코아를 사줬던 꼬마가 얼마 전 ‘의사가 됐다’며 왔더라고요. ‘아저씨, 집에 온 것 같아요’라며 고급 커피를 건네는데, 마음이 뭉클했어요. 제 일이니까 열심히 했을 뿐인데…. 제가 되레 고맙지요. 그저 박물관엔 유물과 관람객들을 소리 없이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권 주사보는 내년 12월이면 정년퇴임을 맞는다. 그때면 30년 몸 담은 직장을 ‘손님’으로 찾게 될 터. 그때도 금동보살은 그에게 미소를 건넬 것이다. 수고했다고, 객이 아니라 ‘집’에 잘 돌아왔다고. 변함 없는 벗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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