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이재명 대통령에게 바란다 〈1〉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폴리페서-하고재비들 모조리 끊고… ‘능력 따른 선택’ 믿을 만한 인선을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이념 갈등… 李대통령 탈당 선언하는 것도 방법
잘못했을 땐 인정해야 국민들 신임… 전임 대통령 사례 타산지석 삼아야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새로 출범하는 이재명 정부에 정파적 갈등을 초월한 통합을 주문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막강한 권한을 잘못 사용하면 추하게 돼버린다”며 “과거의 잘못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겸손하게 권력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원건 기자 [email protected]
《3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내며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만만찮은 대내외적 환경 속에서 국가적 난제들을 풀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떤 원칙과 방향성을 갖고 국정 운영을 해 나가야 할까.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 보복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수준의 과거 청산은 백해무익”이라며 통합을 바탕으로 국가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일 업무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 앞에는 국가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0%대까지 추락한 경제성장률 전망과 민생, 미국발 관세 압박, 급변하는 대외정세와 안보 위협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현안들이다. 극단으로 치달은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 분열 또한 해결이 시급하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서라면 정치 이념조차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태도로 인선과 정책 추진에 나서야 성공한다”고 강조했다. 신학, 철학자이자 시민운동가 출신의 원로 지성인으로 꾸준히 목소리를 내 온 손 교수는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보복이란 인상을 줄 수 있는 과거 청산에 매달리는 것은 백해무익”이라며 “그 일은 수사와 재판 담당 기관들에 맡기고 이재명 정부는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명 정부의 첫 인선이 발표됐다. 어떤 인선 원칙과 방향성을 갖고 사람을 써야 한다고 보나.
“정당이나 이념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서 선택했다고 국민이 믿을 만한 사람을 써야 한다. 그런 인상만 줘도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질 거다. 사람을 선택할 때 혼자 하지 말고, 해당 분야 단체나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많이 구해야 한다. 당선에 공헌한 사람 몇 사람의 의견만 들어서 하는 인사는 실패다. 소위 폴리페서라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찾아다닐 텐데, 그런 사람은 모조리 끊어야 한다. 뭘 하고 싶다고 덤벼드는 ‘하고재비’들은 순수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한텐 어려운 임무라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진짜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통합정부’를 공언했다. 어떻게 실현해 나가야 하나.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은 지역이나 빈부 갈등이 아닌 정치적 이념 갈등이다. 정치인들이 만들어 놓은 분열이다. 새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인식해서 정당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 대통령이 정당을 아예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당이 아닌 국민을 위해 일하려면 정치 이념조차도 포기할 용의가 있다는 태도로 임하는 거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내란 규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보복 논란 없이 이를 진행할 수 있다고 보나. 그 선은 어떻게 그을 수 있을까.
“담당 기관들의 객관적 조사를 따르고, 사법부의 판단을 믿으면 된다. 새 정부는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매진해야지, 적폐니 과거 청산이니 하면 국민들에게 정치보복이라는 인상만 줄 것이다. 정치가 앞서서 미리 결론을 왜 내리나. 자랑스럽지 못한 과거에 새 정부가 쓸 에너지와 시간이 어디 있나. 백해무익하다.” ―그러나 선관위나 사법부 자체의 신뢰도부터 흔들리고 있는 상황 아닌가.
“사법부의 신뢰도를 흔드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장난이다. 권력 집중과 부패를 막는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동안 사법부에 대해 너무 간섭을 많이 했다. 그게 결과적으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제 당선이 됐으니 대통령은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버려야 한다. 대통령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과거 문제로 시간을 보내다가는 앞으로 아무것도 못 한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해 거대 권력을 갖게 된 이 대통령이 야당과 반대파의 목소리를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도록 할 방안이 있을까.
“이 대통령이 여당 야당 프레임을 초월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세기 때문에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일단 논공행상부터 반드시 없애야 한다. 정당의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자존심을 좀 가져야 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수고했다는 이유로 챙겨주려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졸자가 된다.”
―견제 세력이 사실상 없어지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게 될 경우의 정책 독주 등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데….
“주어진 그 막강한 권한을 잘못 사용하면 아주 추하게 돼 버린다. 권력이라는 게 무서운 거다. 잘못 사용하면 남도 망치고 자기와 자기 후손에게 고통을 주는, 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임 대통령이 과거 잘못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심각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부족하고 모르는 분야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겸손하게 주변에 자문을 구해야 한다. 잘못한 게 있으면 말도 안 되는 구실 붙이지 말고 즉각 잘못했다고 인정해야 국민의 신임을 얻는다. ‘내가 다 알고, 권력 쥐었으니 내가 모든 걸 다 하겠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이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 중에는 찬반이 극렬하게 나뉘거나 우려를 낳는 정책들이 적잖다. 시행 과정에서 예상되는 부작용과 충돌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 번 내놓은 정책이라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할 불변 정책은 아니라고 본다. 솔직하게 ‘당선을 위해서 필요했는데 이제는 새롭게, 나라에 정말 이익이 되는 걸 논의하자’고 해주면 좋겠다. 매우 극단적인 반대가 있는데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건 어리석다고 본다. 어느 정도의 반대야 늘 있겠지만, 심하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정도로 갈리는 사안이라면 좀 보류할 수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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