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규진]‘어게인 2018’ 관심 없는 北… 남북 관계 플랜B 있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25일 23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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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진 정치부 기자
신규진 정치부 기자
“‘플랜B’가 무엇인가.”

최근 국정기획위원회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말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한 가운데 정부의 남북 관계 복원 노력에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대안이 있느냐는 취지였다. 장내엔 침묵이 흘렀다.

한반도 평화 조성을 위해 이재명 정부가 내건 공약 중 두 개가 취임 일주일 만에 현실화됐다. 1년간 가동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지됐고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민간단체에 단속·처벌까지 예고됐다. 담당 부처인 국방부와 통일부에서조차 “예상 밖의 속도”라는 반응이 나왔다. 여기에 북한이 대남 소음 방송 중지로 화답하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유례없이 빠른 선조치가 효과를 거두면서 북한이 계속 장단을 맞추고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감돌지만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방송 중지는 우리 정권 교체나 대남 노선 전환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비례적 조치에 가깝다. 북한식 논리대로 대남 방송은 대북 방송 때문에 시작됐기에 중지됐다는 것. 한 대북 소식통은 “보위부에서 접경지 주민들에게 괴뢰가 꼬리를 내렸다는 식의 선전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대내외 여건을 따져 봐도 남북 관계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내부적으로 10월 노동당 창건 80주년과 내년 초 9차 당 대회를 앞둔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교착된 상황을 틈타 러시아와 추가 파병에 합의했다. 이미 2년 넘게 러시아와 밀착하며 북한은 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식량, 원자재, 정제유 등을 받아 경제 분야에서도 활로를 모색했다. 김 위원장의 자신감은 지난해 10년간 매년 20개 시군에 현대적인 공장을 만들겠다는 ‘지방발전 20X10’ 정책으로 증명됐다.

게다가 2년 넘게 선대 유훈인 통일을 삭제하고 고강도 대남 단절에 나선 김 위원장이 이를 뒤집는 걸 주민들에게 정당화하려면 큰 결단이 필요하다. 러시아가 도와주고, 한미가 대화를 구애하는 현 상황이 김 위원장 집권 이래 가장 좋은 전략적 환경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벼랑 끝으로 치달았던 한반도 정세가 김 위원장 신년사로 천지개벽 수준으로 뒤바뀌었던 2018년을 다시 기대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플랜B’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상호주의에 대한 기대에 매몰됐을 때 남북 관계는 정권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 2019년 북-미 하노이 ‘노딜’ 이후 나 홀로 종전선언에 집착하다가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친 문재인 정부엔 항상 “대북 저자세” “북한 눈치 보기”란 비판이 따라다녔다. 당시 남한을 활용해 북-미 대화 추동력을 얻고자 했던 김 위원장은 이 실패를 교훈 삼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이 대통령은 배제하려 할 수 있다.

접경지 주민의 고통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대북 방송 중단이라는 선제 조치가 불가피했을 수 있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현 정부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넘어 궁극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 등 다음 대북 카드를 꺼내 드는 시점과 방식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 스텝을 밟을 때쯤엔 ‘플랜B’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마련돼 있어야 할 것이다.

#남북 관계#김정은#한반도 평화#군사 협력#정권 리스크#플랜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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