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경쟁력의 비밀, 디자인이 만드는 ‘소프트파워’[기고/오병근]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6월 5일 2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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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근 연세대 디자인예술학부 교수
오병근 연세대 디자인예술학부 교수
국제 정치외교 무대에서 ‘소프트파워(Soft Power)’ 개념을 처음 주창한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지난달 별세했다. 그의 대표 저서 ‘소프트파워’는 2004년 국내에도 번역되며 반향을 일으켰다. 문화·가치·외교적 설득을 통한 영향력은 군사력이나 경제 제재 같은 하드파워보다 더 근본적인 힘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소프트파워는 ‘선호대상을 만드는 능력’에 바탕을 두며, 국가뿐 아니라 도시 간 관계에서도 중요한 힘으로 작용한다. 선호대상이란 도시가 추구하는 독창적 가치, 역사, 문화, 물리적 환경을 아우른다. 이 매력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핵심 수단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공감과 정서적 유대를 이끄는 미학적 질서를 만들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때 그 대상에 대한 선호와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감정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역할이 바로 소프트파워의 원천인 것이다.

세계적인 도시들은 공통적으로 디자인을 핵심 전략이자 수단으로 활용한다. 세계 도시경쟁력 지수(GPCI) 상위권 도시들은 디자인으로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구축해왔다. 서울 역시 2006년 민선 4기 전국 최초로 ‘디자인서울’을 표방하며, 도시 행정 전반에 디자인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소프트 서울’로 탈바꿈하려는 시도였고, 디자인 조례·정책·가이드라인은 지금의 도시 미관과 브랜드 정립의 초석이 되었다.

현재 민선 8기 ‘디자인서울 2.0’ 정책은 기존 철학을 계승한 도시경쟁력의 핵심 전략으로서 디자인의 역할을 더욱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민의 삶을 향상시키는 생활밀착형 디자인을 중심에 두고 서울라이트 광화문·DDP, 러너스테이션, 여의롤장 등을 통해 도시 공간을 재해석하며 도시의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시민 중심 디자인정책은 물리적 환경을 넘어 도시 감성을 더하는 사회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며 ‘서울다움’의 기반이 된다.

이런 고유한 매력은 도시의 감성을 전달하는 문화적 언어이자, 디자인 정책의 핵심 방향이다. 즐거운 활력도시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서울서체’ ‘서울색’ 등 디자인 자산을 구축하고, 이를 공공디자인 전반에 적용해왔다. 이는 도시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시민과 방문객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도시의 독창적인 감각을 체감하게 한다. 서울지하철 노선도와 안전디자인 역시 도시 이미지에 감성을 더하고, 서울만의 정체성을 각인시킬 수 있다. 이러한 공감 기반 디자인은 도시의 매력을 내면화하고, 역사와 문화적 상호작용이 풍부한 감성 도시,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서울다운 공간, 세대와 약자를 포용하는 안전한 도시로서 소프트파워 이미지를 축적해간다.

이렇게 축적된 소프트파워는 도시 외교와 글로벌 협력의 기반이 되며, 도시가 나아갈 스마트파워(Smart Power)의 방향성도 제시하고 있다. 나이 교수가 제시한 소프트파워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며, 감성과 전략이 조화로운 디자인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서울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글로벌 도시 간의 경쟁이 물리적 자원보다 매력과 공감의 언어로 펼쳐지는 지금, 디자인은 서울이 세계와 연결되고 기억되는 방식이자, 그 정체성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소프트파워#디자인#도시경쟁력#서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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